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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예시3 _ 류정호 목사님(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2020-08-19

제목: “길이 아닌 길”

성경: 갈라디아서 1장 7절~10절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Ⅰ. 들어가는 말

지금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두고 찬반이 엇갈립니다. 국회는 다수당의 힘과 여론몰이로 법을 통과하려 합니다. 정의당은 성 평등과 선택권 운운하며 정의를 외칩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세워 가나안 땅을 살펴보게 합니다. 40일 동안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모세와 백성 앞에서 보고를 하는데 이구동성으로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겁니다.


민수기 13: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정탐꾼의 의견이 일치하는데, 그 다음부터는 두 편으로 갈라져서 상반된 보고를 하는데, 한쪽은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민수기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지금 당장 올라가자는 주장이고,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은 “안 된다.”는 겁니다. 절망적이라는 겁니다.


민수기 13: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두 가지 상반된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불행하게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쪽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우리는 메뚜기다.” 두려움이 자신들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1절을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왜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서 여기에 데리고 왔느냐? 비록 노예였지만 그 때가 나았다 돌아가자! 야단법석에서 혼란으로 갑니다. 한편으론 이해가 됩니다. 정탐꾼의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비슷한 숫자도 아니고 10대 2의 압도적인 표차 아닙니까? 열 명 대 두 명이면 당연히 열 명 쪽에 마음이 가기 마련인데, 위험한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론이나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에 민의를 물어 법을 만드는 것에 동의하지만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론 대세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때론 10대 2로 열세일지라도 우리가 지켜야하는 것이 진리라면 순교의 영성으로 지키고 투쟁해야합니다.


가치가 충돌할 때 판단 기준은 오직 성서입니다. 다시 말씀을 중심에 두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동성애, 포괄적 차별 금지법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말씀에 비추어서 되물어야 합니다. 동성애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출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사회적 합의라고 하지만 소수의 주장입니다. 동성애를 차별로 간주하는 그들의 주장이 과연 어떠한 허점을 지니고 있는지 나누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주장의 허점을 살펴보겠습니다.


Ⅱ. 코로나19와 차별금지 –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중성

지난 7월 1일 인권위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이날 인권위가 공개한 법안 시안을 살펴보면 ‘차별금지법’ 대신 ‘평등법’이란 이름을 앞세웠습니다. 한 마디로 법안 프레임을 ‘평등’, ‘자유’, ‘차별 금지’ ‘존중’ 등 민주주의가 수호하는 가치를 앞세워 동성애에 대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인권위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게 느껴집니다. 그들이 지키자고 말하는 평등의 가치를 코로나19 때는 스스로 침묵하고 용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긴급하게 “K방역 체계”를 출범시키며 세계적 모범 사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이 국가 체면을 형편없이 구겼을 때 발 빠른 조치로 확산을 막았습니다.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질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이 이뤄졌고,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강력한 봉쇄 조치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조치에 대한 불만도 컸습니다. 질병을 막아주지만 심각한 인권 차별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감염자 동선 및 이동 수단 추적 공개, 확진자 강제 격리 및 이동 제한, 정부·지자체의 긴밀한 정보 공유. 끝없는 의료진의 희생, 강압적 방역과 폐쇄, 교회 등 소그룹 모임 제한, QR코드 설치 등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조치입니다. 그리고 국익을 위해서라고, 다수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인권단체는 어떠했습니까? 정부 차원에서 봉쇄 조치를 취하자 곳곳에서 반대 집회가 벌어졌고 그렇게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도 인권단체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소중하게 여겨서 저항했습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는 어떠했습니까? 7월 1일 국회에 차별금지법 법률안을 제정하라고 당당하게 입장 표명한 그들이 그때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우려’였습니다. 사전에서는 우려를 “근심하거나 걱정하다.”로 설명합니다. 과거 경찰국가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할 만한 제한 조치에 인권위의 입장 표명은 ‘우려’였습니다. 심각한 인권 침해에 저촉되는 조치는 사실상 용인하고, 동성애 반대에 대해서는 심각한 차별이며 법적으로 제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일관되지 않는 입장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같은 인권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개인의 신상이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공개되고, 동선이 추적되며, 강압적 제한과 폐쇄, 예배당 QR코드 의무화에 대해서 ‘우려’라고 하면서, 동성애 반대에 대해서는 심각한 저촉이라고 말한다면 논리의 일관성은 한참 결여된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인권위원회의 입장이 이중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마이클 센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동성애 논쟁의 진짜 쟁점은 평등, 선택과 자유, 차별에 있지 않다고 이미 지적했습니다(357P). 그는 “동성애, 동성혼 문제의 핵심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영광과 인정을 받게 한 결혼의 미덕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련되고 고상한 평등의 가치로 포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권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시작부터 이어져온 결혼의 목적, 결혼이 칭송하는 미덕, 종교적·윤리적 가치, 사회적 공감은 송두리 째 무시한 채 차별의 프레임을 씌어 마치 동의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가치,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교묘히 역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또 다른 차별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소수의 선택권을 위해 다수와 사회 전통과 미덕이 무시되는 것이 평등한 법입니까? 에이즈에 걸린 환자의 인권을 존중합니다. 비밀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인권을 존중한답시고 에이즈에 걸린 소수의 무책임한 행동까지 비밀에 부쳐야 해서 국민 다수가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이것이 인권국가인가요.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결혼의 미덕, 인권을 평등이란 이름하에 동성애를 허락하는 법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Ⅲ. 성경은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로마서 1장을 보면 27절에는 “순리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어 성경은 ‘퓌시코스’라는 단어인데‘자연에 속하는’, ‘자연스러운’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바울 사도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이 순리에 맞는 것 자연스러운 것 하나님의 창조 질서라고 가르칩니다. 자연에 거슬러 행동하는 것, 다시 말해 동성애란 하나님이 설정하신 질서를 위반하는 것을 의미하며 창조주의 의도에 반역하는 행동입니다. 창세기는 이것이 무엇인지 기록했고 예수님이 확증하셨습니다.


먼저 창세기 2장 24절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마태복음 19장 4-6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세기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결론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이성간의 연합으로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연합하신 것을 사람의 생각대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동성애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할 분명한 입장이 주님의 말씀을 통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이성간, 그리고 “한 몸” 일부일처제 내에서만 경험하도록 설정하셨고, 동성끼리 짝을 맺는 일은 창조질서에 반하는 것이며 절대로 결혼에 대한 타당한 대안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점을 확증해 줍니다.

만약 평등법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법으로 동성애를 허용할 수 있다면, 왜 동성애만 가능한가요?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도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입법을 서두르는 자는 대답해야 합니다. 누가 결혼할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려면 결혼의 목적, 결혼이 칭송하는 미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결혼의 이유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결국 동성애는 차별, 평등이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 논란이 이는 영역에 도달할 수밖에 없고 이 때 좋은 삶을 두고 대립하는 개념에 대해 우리는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애정이 깊고 헌신된 관계라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동성애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Ⅳ. 지킬 만한 것을 마땅히 지키자.

말씀을 마무리하며 잠언 4장 23절을 나누고 싶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결혼의 미덕, 결혼의 가치는 우리가 지켜야할 하나님의 말씀 진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본질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내가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에게 맞게,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에게 맞게’ 융통성 있게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해서는, 본질에 대해서는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고 바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갈라디아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갈라디아서 1:7-10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세상 안에 머무르면서도 또한 세상 안에 동화되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면서도 구별되지 않고,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증거 하면서도 사람들만 좋게 해서도 안 되며, 옳은 가치를 지키고 가르쳐야 하는 것, 기독교 신앙의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정신으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치됨을 보여야 합니다. 이것은 관용을 베풀 일이 아닙니다. 동성애자도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알고 존중합니다. 동성애자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이 창조의 원형을 회복하여 본래의 성으로 돌아오게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존중하지는 않습니다. 동성애는 적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도와 교회는 일어나야 합니다. 외쳐야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가 수호되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사명이 지켜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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